Wiarae31: A strategic analysis of North Korean society through the lens of a former insider. This prologue explores the 30-year survival of the regime predicted in 1994.
머리말
1994년 7월8일, 그때 나는 남한에 입국한지 얼마 안되어 정부의 조사기관에 있었다. 북한에 있었으면 청천벽력(?) 같았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나는 덤덤했다. ‘그래, 죽었구나. 김일성이 죽었구나’ 마음이 평온했다. 오히려 평온한 내 마음이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북한에서 “위대한 수령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라는 노래를 수천번도 넘게 불렀었다. 생활총화나 회의, 행사때마다 불렀으니 김일성은 죽으리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북한에 그냥 살았다면 김일성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내 심정은 그 때 같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김일성 사망과 관련하여 많은 북한 전문가들과 사람들이 북한을 전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기관들, 심지어 정부측의 시각도 김일성 사망으로하여 북한은 사망 선고를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북한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은 나는 북한은 30년이 넘어도 붕괴되지 않을 것이며 3년이나 5년쯤 지나면 북한의 향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후 남한 물을 조금씩 먹어가면서 남한사람들처럼 북한이 조기 붕괴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나의 바램일뿐이라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북한은 아직도 견고하게만 보인다. 북한에 대한 나의 판단이 흐려지고 있다는 증거인 동시에 북한에서의 몸에 밴 관습과 사고방식, 개념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도 이제는 싱싱한 북한사람이 아닌 것이다.
남한생활을 하면서 글을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1996년이었다. 당시 언론과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 사후 북한에서 주민들의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보도와 견해를 밝혔다. 북한에서의 경험으로 볼 때 북한에서는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는데 ‘시위’나 ‘폭동’을 운운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후 북한실상 강연도 다니고 남한사회를 접하면서 남한의 사회와 정부 심지어 북한 전문가들까지도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남한의 시각과 기준으로 북한을 평가하는 것’이 남한의 북한을 잘못 인식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의 주장과 생각들을 귀중히 여겨주고 글로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나의 글쓰기는 계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쓴 글은 항상 엉성하고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며 논리적이지 못한 것이었다. 잡지에 북한실상을 연재하면서 내가 느낀 애로는 남이 물어보는 질문에는 막힘없었어도 정작 글로 표현하려고 하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써놓고 보면 내용과 문장들이 엉망이었다. 남한의 중학교 학생들이 쓴 글도 보았지만 그보다도 못한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무지스러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 교육받은 능력으로는 남한사람들에게 북한에서의 삶에 대해 충분히 납득을 시킬 수 있을 지적 수준이 나에게는 모자라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나름대로 객관성을 살리느라 애를 썼으나 마음과는 다르게 비판적으로 글이 씌여진다는 것이었다. 남한사회의 모습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또 북한에서 적성국이었던 다른 반쪽의 조국에 왔다는 것이 그렇게 쓰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남한에 온 초기부터 북한실상에 대한 강연을 많이 하다보니 비판적 시각이 몸에 배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것은 북한의 체제나 사회환경, 통제구조가 그많큼 모순되고 강력했기에 비판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오랫동안의 반공 이데올로기에 습관된 많은 사람들이 이것도 혹시? 하고 믿지 않을까 우려해서이다.
북한은 신비한 나라다. 자유롭고 개방된 남한 사회에, 그것도 수많은 젊은 대학생들에게 한때 동경의 대상으로 김일성 우상화의 바람까지 불어넣었으니 말이다. 겉으로는 철저해 보이던 나라가 몇 년이라는 짧은 순간에 굶주리고 경제가 피폐하고 인권유린이 일상사처럼 자행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마 친북한적 생각을 갖고 있는 남한 사람들에게 분명 충격이었을 것이다. 북한사람은 얼굴색도 빨갛고 머리에 뿔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는 남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이제는 북한에 대해 진실을 알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에서 미숙한 글이나마 모아 책으로 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북한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과 북한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로서는 고마울 뿐이다.
끝으로 이 책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서동익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또한 옆에서 나의 미숙한 글쓰기를 보아주고 가르쳐준 북한연구소 연구편집부 박영규 편집장님의 배려에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1999년 11월 23일
김승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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