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안기부 조사실, "북한은 앞으로 30년은 더 갑니다"라고 말했던 이유 /Wiarae31: Beyond the Border – A 30-Year Insight from a North Korean Insider

 

들어가며: 30년 전의 예언, 그리고 오늘

1994년 5월 18일, 제가 처음 대한민국 땅을 밟았을 때를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적인 날에 김포공항으로 입국했습니다. 당시 우리 5명은 대한민국이 해외에 있는 북한을 탈북한 북한주민을 공개적으로 받은 역사적인 첫 사람들이었습니다. 


    1994년 5월 18일, 김포공항 입국 당시의 모습. 함께 입국했던 동료들의 긴장된 모습도 보인다.


북한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떤 형태로든 입국하면 보통 대략 3개월의 안기부의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과정에 김일성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남한 사회는 김일성의 사망(1994년 7월) 직후라 금방이라도 북한 체제가 붕괴할 것 같은 기대감과 혼란이 교차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을 때, 조사관들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북한, 저 상태로 얼마나 가겠나?"

같이 조사를 받던 다른 탈북자들은 대체로 1~2년, 길어야 5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 답할 때, 저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어도 30년은 더 갈 것입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흐른 지금, 저는 제가 1996년에 썼던 빛바랜 원고 한 편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당시 모두가 '북한 붕괴'라는 희망 섞인 관측에 매몰되어 있을 때, 제가 왜 그토록 냉정하게 북한의 생존력을 보았는지 그 기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 왜 북한 주민은 폭동을 일으킬 수 없는가?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유례없는 식량난과 수해로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었습니다. 외부 세계에서는 "배고픈 주민들이 곧 들고일어날 것"이라고 추측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장에서 겪은 사실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폭동이 불가능함을 역설했습니다.

첫째, 철저한 '의식의 봉쇄'입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배고픔은 그저 '생존의 고통'일 뿐, '체제 전복의 동력'이 되기 어렵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비교 대상도, 자유라는 개념도 사치였습니다. 정권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그것은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어서 극도로 숨겨야 하는 '흉기'와도 같습니다. 

둘째, 강력한 '폭압 체제'에 대한 정권의 자신감입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불만을 무시할 수 있는 완벽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수만 명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남북 대화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부 반란을 100% 진압할 수 있다는 그들만의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북한주민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실제 현실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완벽한 언론통제, 감시 등으로 실제현실을 알 수가 없고 정권이 방송하고 선전하고 학습시키는 '보여지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북한주민이 현실을 본다해도 4km내외의 자신의 생활반경에서만 가능한데 이것마저도 정권이 만든 '세뇌와 공포의 필터'를 통해서 보는 것이 훈련되어 있습니다. 



2. 선의의 지원이 가져온 역효과

당시 제가 원고에서 지적했던 또 다른 핵심은 '외부의 오판'이었습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쌀 지원이 오히려 북한 지도부의 입지만 강화해주고, 주민들에게는 "장군님 덕분에 먹을 것이 들어온다"는 선전 도구로 전락하는 현실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또한, 남한 내 일부 세력들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며 체제 유지에 본의 아니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당시 제가 비판적으로 보았던 대목입니다.


3. '경계인'으로서 다시 펜을 드는 이유

제가 예언했던 '30년'이 흘렀습니다. 북한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30년 전과 지금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주민들의 의식 변화'**입니다. 외부 정보가 유입되고, 장마당 세대가 등장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제가 1996년에 썼던 "주민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는 날"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 **[위아래31: 경계를 넘어]**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제가 지켜본 북한의 실상,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통일의 미래를 '경계인'의 시각에서 생생하게 기록해 나가려 합니다.


마치며

30년 전 안기부 조사실에서 했던 저의 대답은 비관론이 아니라, 가장 냉정한 현실 분석이었습니다. 이제 그 30년의 끝자락에서,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30년을 위해 제가 가진 경험과 전문성을 이 블로그에 쏟아붓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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