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3] 열차는 삶의 고통을 싣고 (1) [Series 03] The Train That Carries Suffering: Boarding Without a Travel Pass

이 글은 1996년 12월 불교 잡지 <금강>에 기고했던 연재물입니다. 북한 현실의 시대성과 진실성을 위해 원고 교정을 거쳤습니다.

프롤로그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열차를 타려다가 뭔가 알수 없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역 개찰구에서 가만히 서서 생각해보니 나에게 여행증이 없는 것이었다. 그때는 혼자 웃고 열차를 탔지만 훈련된 관습이란 그토록 무섭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여행이 사치스러운 북한에서 열차표도 승인이 있어야 살 수 있다보니 언제부턴가 생존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장사가 생존의 기본이고 장사를 하려면 열차를 타야 하니 목숨걸고 열차를 탄다. 열차 지붕과 문에 올라타고 매여달리고, 열차연결부나 심지어 바퀴가 돌아가는 그짬에도 타기도 한다. 처절한 북한주민의 애환이 담긴 열차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여행하는 손님들 안녕하세요
             무엇이나 좋으니 요구하세요.
             판매차도 가벼이 밀고나가면 
             차칸마다 웃음꽃 화짝핀다오 
                             

이 노래 가사는 1970년대 말 북한의 예술영화 "우리열차 판매원"의 주제가다. 영화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북한의 열차는 여행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은 되었었다. 사람은 많아 자리는 없어도 편안하게나마 서서 갈 수 있는 조건이라도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북한은 열차를 타고 간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목숨을 건 모험에 가까운 위험 천만한 일이다. 그래도 북한주민들은 필사적으로 기차를 타기 위해 노력한다. 열차의 창문으로, 출입문으로 서로에 대한 욕설과 어떻게든 들어가자는 소리소리 높은 목청을 돋우며 말이다. 식량구입을 위해 장거리를 떠나는 주민들에게 기차는 그중 나은 확실한 통행수단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TV뉴스에 양강도 혜산시의 실상을 방영하는 화면에 북한 주민들이 열차의 지붕을 타고 가는 모습을 담은 화면이 방영되였다. 전국이 일일 생활권에 들어있고 자가용은 이제 사치가 아닌 남한 사람들에게 마치 기억 저편의 역사의 현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생존이라는 본능을 위해 기차 지붕에 오르는 것은 위험이 아닌 일상으로 변해버린 북한주민의 삶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북한에서는 열차란 생존을 이끌어가는 기관차이자 같이 식량확보를 위한 ‘고난의 행군’의 가장 절실한 운반수단이다. 한때는 필자도 북한에서 기차의 지붕우에나마 타고 가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여행증을 잊고 개찰구에 선 남자

북한의 열차는 남한의 비둘기호 같은 그러한 수준의 열차이다. 필자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차를 탔을 때였다. 서울역에서 차표를 사가지고 개찰을 기다리는 주민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 분명히 몸에 지녀야 할 것을 둬두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나를 괴롭혔다. 

안내방송이 울리고 개찰을 시작했을 때에야 그 괴롭힘의 원인은 다름아닌 열차표는 샀는데 여행증이 없었던 것이다. 역무원이 차표를 확인하는 자리에서야 나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수십년간 몸에 밴 훈련과 습관이 얼마나 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여행증도 등급이 있다

북한에서 타 지방을 여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은 열차이다. 다른 교통수단으로서는 시외버스가 있다. 그러나 시외버스는 운행거리가 보통 도시에서는 교외로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50킬로미터 이상을 넘지 않는다. 시외버스는 인접 군이나 도시를 운행하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50킬로미터 이상을 운행하는 버스는 산골에서 군과 군사이, 또는 철길에서 많이 떨어진 군에서 기차역까지 운행하는 시골버스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민들은 본선(本線)과 간선(幹線)으로 비교적 조밀하게 연결된 열차를 많이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증도 등급이 있다.

이제는 웬만한 남한 사람이면 북한에서 기차를 타려면 열차표 외에 여행증을 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제도인 동시에 북한주민들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통제수단의 하나이기도 하다. 여행증명서는 ‘출장증명서’와 ‘여행증명서’ 두가지 종류로 되어있다. 

직업상 출장을 위해 가는 사람은 출장증명서이고 개인적으로 타 지역을 가는 사람은 여행증명서를 구비해야 하는것이다. 철도부문에서 일하는 일부 사람들은 “무임승차표”라는 것을 같고 있다. 기관사나, 철도부문 간부들이 이러한 ‘무임승차표’를 갖고 있는데 이는 철도부문에서 필요한 직원들에게 발급해주며 이 ‘무임승차표’를 갖고 있으면 열차표를 떼지 않고 열차에 탑승할 수 있다. 

이외에 출장증명서와 여행증명서를 대신하는 특수 증명서들이 있다. 중앙당간부들과 대남공작대로 알려진 ‘대남연락소’ 요원이나 주석궁전의 특별직원 등 신분이 특이한 사람들은 별도의 증명서를 갖고 있어 여행증을 대체한다. 특수 증명서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김일성의 사인이 들어있는 뻘건 줄이 간 신분증이다. 이와 같은 신분증은 역전에서 여행증의 체크가 없이 열차표를 살 수 있다. 

이같은 특별 신분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직업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다. 자기의 신분에 대한 긍지감은 곧 자기의 삶에 대한 성취욕의 달성으로 생각하고 현실적으로도 이러한 신분은 그 특수하다는 권위만큼이나 삶을 살아가는데서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열차안전원들은 이러한 신분증에 대해서는 겉 뚜껑만 보고도 깍듯이 경례를 붙이며 존경해준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권력위주의 북한사회에서 안전원이라도 잘 못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특별신분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당과 국가의 신임에 대한 충성도도 당연히 높다. 반면에 일반인들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여행증을 뗄 수 있다. 일반주민들은 사망, 결혼, 제사 등으로 여행증을 신청하게 된다. 북한에서는 관광을 목적으로 여행증을 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경치를 즐기거나 휴식을 위해 명승지를 찾을 만큼 여가도 없고 사회적으로 그런 풍토를 허용할만한 제도도 없다. 다만 국가에서 각 사회조직의 모범일군이나 학생들로 국가에서 마련해준 극히 일부의 관광코스를 여행하는 것이있다. 

이러한 관광코스로는 묘향산, 금강산, 칠보산이 있고 혁명전적지 답사여행이 있는데 이는 대학생들의 경우 의무성을 띠며 백두산 코스와 북한 동북부 코스가 있다. 이 코스 여행도 기차를 주로 이용하며 여행증은 단체 여행증이라는 것을 떼어가지고 간다. 

여행증도 등급이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보통여행증을 가지고는 못가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특별히 ‘승인번호’가 하달되어야 한다. 평양과 휴전선 일대와 국경연선의 지역은 평양에서 지급한 ‘승인번호’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 ‘승인번호’는 평양의 중앙 사회안전부에서 유일하게 발행하며 여행증을 떼어 차표를 사고 목적지로 갔어도 승인번호가 확인되지 않으면 안전부에 단속되어 고초를 겪게 된다. 이러한 ‘승인번호’제도는 알게 모르게 북한주민에게 지역의 특수성과 사회적 계층구별을 하게끔 훈련시키는 기능도 한다. 평양은 ‘승인번호’가 있어야 간다는 생각은 일반 주민들로 하여금 평양의 숭배의식과 1등 국민에로의 지향성을 갖게끔 하는 것이다. 때문에 평양사람들은 수도에서 산다는 긍지가 크며 지방사람들을 깔보는 경향이 아주 농후하다.

표 한 장을 구하는 전쟁

일반인들은 역전 매표구에 여행증명서를 제시하여 여행증의 발급날자와 기간 등을 확인한 후 열차표를 살 수 있다. 북한의 철도는 열차가 제한되어 있어 일일 차표판매량도 제한되어 있다. 역전의 열차표를 판매하는 처녀들은 직업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이들에게는 해당 역전에서 기차표를 사야하는 간부들과 돈 많은 사람들, 폭력조직의 어깨들, 안전원과 친척 친구들이 열차표를 사기위해 연줄을 댄다. 

간부는 권력의 힘으로 돈 많은 사람은 돈의 힘으로 그들을 사귀어 놓고 필요시에는 열차표를 팔기 몇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는 수고스러움을 더는 것이다. 열차표를 판매하는 처녀들을 잘 알아두면 주변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여러모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회가 많다. 북한에서 살 줄 아는 사람들의 처세술이 빛나는 그러한 모습인 것이다. 이 외에도 도시에는 역전을 담당하는 분주소가 따로 있는데 분주소의 안전원들도 열차표를 빨리, 확실하게 살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역전, 삶과 죽음이 스쳐가는 자리

역전은 북한사람들의 삶이 흘러가는 정류장이다. 삶에 지친 모습에서 출세하여, 혹은 평양구경가느라고 기뻐하는 사람과 먹을 것을 구걸하는 거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역전이다. 최근에는 꽃제비들과 삶에 지쳐 먹을것이 있을 것 같은 그 어데론가 마지막 힘을 다해 도착하여 죽어서 청소원들에 의해 실려나가는 시체들의 처리장이기도 하다.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에서는 그 역전을 겨우 통과해 열차에 오른 뒤에 벌어지는 일들 — 목숨을 건 승차 '전투', 부서진 창문과 얼어붙은 객차 안 풍경, 그리고 김일성의 전용열차가 지나갈 때 멈춰서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정평·백암령·신성천에서 일어난 열차 사고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필자 추기 — 2026년]

북한은 변화하지 않는 나라이다. 나라가 변화면 체제가 지탱하기 어려워지는 나라, 그곳이 바로 북한이다. 북한이 1950년대와 60년대에 소련과 중국, 동유럽의 지원으로 사회주의 공업화를 이루고 그 토대에서 전기기관차도 만들고, 철도의 전기화, 현대화를 했는데 1980년대 이후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지금도...
그냥 북한은 낡아져 갈뿐이다. 언제까지? 그것은 모른다. 변화, 질적 변화가 있을때... 북한은 주민들이 자유와 권리를 가지지 않을까? 지금도 1980년대, 70년대에 만들어 두었던 기관차, 열차들이 열심히 낡아진 것을 수리하면서 다닌다. 북한에서 여객열차는 정시가 이상한 나라이다. 

북한주민의 고통을 싣고 다니는 열차. 그래도 그 열차가 없으면 북한주민은 어떻게 살아갈까?


[필자 소개]

글쓴이: 김승철 (닉네임: NKMAN)

전) 북한개혁방송(North Korea Reform Radio) 대표 (2008~2025)

전) 북한연구소(Institute of North Korea Studies) 연구원 (1997~2007)

문의 및 제안: nkmans@naver.com

태그: 80년대 북한 이야기, 칼럼, 다시 읽는 기고문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