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7년 1월, 불교잡지 「금강」에 게재되었던 칼럼을 원문 그대로 옮기며 정리한 것입니다. 필자가 1980년대 북한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로, 표현은 다듬되 원문 문장은 고치지 않았습니다.
프롤로그
내가 살았던 1980년대와 90년대 초의 북한에서 새해를 맞으며 연하장을 쓰는 문화가 있었는데 고정 문장이 있었다. "희망찬 새해를 맞으며..." 그러나 현실은 '희망찬 새해'가 아니었다.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 날이었다. 무엇을 줄 것인가, 얼마나 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받기 위해 얼마나 오래 줄을 서야 하는가 — 명절의 기쁨은 배급소의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이미 계산되고 있었다.
이 글은 1997년 1월, 「금강」에 실었던 글을 거의 그대로 다시 꺼내온 것이다. 근 삼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그 시절의 냉기와 냄새, 그리고 줄 서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다. 이 글이 북한을 연구하거나 이해하려는 분들에게, 통계나 보고서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 시절의 공기를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북한과 남한의 설은 서로 다르다. 옛적에는 서로 같은 풍습과 전통을 갖고 있던 남한과 북한은 분단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풍습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음력설을 쇠고 북한은 1월1일을 설명절로 쇤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북에서 음력설을 명절이라고 여겨본적이 있었던지 기억도 아득하다. 음력설은 지나간 역사에서나 쇠던 명절로 알았다. 북한의 낡은 봉건유습을 타파하는 ‘복고주의 타도’ 운동 때문인 것이다. 80년대 말에 가서야 음력설을 명절로 한다고 발표하였지만 몇십년 내려오던 관습이라 사람들은 그래도 설은 양력으로 쇠는 것으로 여긴다. 또 신정을 설로 여기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새해의 ‘전투적 과업’을 제시하는 김일성의 신년사가 1월 1일에 발표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 설명절면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세배돈을 받는 재미에 세배를 드리던 생각이 난다. 오래전에는 북한에서도 설이면 이웃들간에 세배를 드리고 맛잇는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정을 나누던 사람다운 삶의 세월이 있었다. 80년대 중반, 그러나까 배급이 양은 적어졌어도 제대로 주었던 시기까지는 가까운 주변의 친척들이 모여 앉아 즐겁게 설을 쇠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식량난이 앗아간 정겨운 설 풍경
| 위 이미지는 필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AI가 재현한 상상 장면입니다. |
그러나 그런 모습들은 8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식량사정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새해가 다가 올수록 누구보다도 가슴졸이며 남몰래 속을 태우는 사람은 다름아닌 가정주부들이다. 그들은 “이번 설에는 상점에서 무엇을 줄지…”하며 걱정을 하고 모여앉으면 이번 설에는 무엇을 줄것인가를 점쳐본다. 그리고 없는 살림에도 배급에서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쌀을 절약하여 설 한끼라도 사람답게 먹어보려고 애를 쓴다.
체면을 건 술과 안주 마련
흔히 북에서 세대주라고 하는 가장들인 남자들도 설이 오면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음식거리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남자들이 명절이나 설을 쇠기 위해서는 빠져서는 안될 것이 몇가지 있다. 그것은 술과 고기와 같은 안주거리 등이다. 술이란 인간의 마음을 달래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이지만 북한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술이 있어야 남자들이 모여앉고 마시고 알게 모르게 구속의 굴레를 벗어던져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명절에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남자구실을 못하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비쳐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풍습에서 명절이면 친한 친구들이나 동창, 직장친구와 상사들이 모여앉아 술을 마시며 회포를 푸는 관습이 자리잡았다. 남한에서 1차, 2차를 가듯이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의 집으로 옮겨가며 술을 마시는데 친구들이 왔을 때 술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망신스럽고 남자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명절에 술이 없이 손님을 받았다가는 ‘능력없는 남자’로 왕따당할 수도 있다. 때문에 남자들, 특히 젊은이들은 명절이면 술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행여 어데가서 설에 먹을 고기나 술 같은 것을 구하려고 뛰여다니지만 그런 능력마저 없는 사람들은 설이 다가오는 것이 슬플뿐이다. 그들에게 설로 인한 즐거움과 기쁨보다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터져나오는 한숨만 높아간다. 더우기 1994년과 1995년 두해 연속 수해를 입고 엄청난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의 설 풍경은 더욱 그 모습이 쓸쓸할 것이다.
폭등한 쌀값, 달라진 살림
필자가 북한을 떠날때인 1991년에 쌀 한킬로그람의 값이 18원이였던 것이 지금의 북한에서는 140원을 한다고 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한달에 70~80원을 받는 일반 근로자들이 설을 즐겁게 쇤다는 것은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설명절이 잘사는 계층에게는 즐거울지 몰라도 일반인들에게는 설음식을 준비하는것도 모두 상점에서 공급하는 것에 의지 해야 하므로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국가가 정해주는 설 명절 공급
상점에서 주는 것은 국가에서 정하는데 설명절 공급은 설명절 5일 전쯤에 시작하는데 공급이 시작되어야 밝혀진다. 얼마 안되는 부식물 공급을 받으려고 줄을 서며 그나마 떨어지면 어쩌나 해서 노심초사 가슴을 조이던 설 전날의 풍경이 생각난다.
북한이 물자의 제한으로 전면 공급제로 전환한 70년대부터 설명절 공급의 주요 메뉴는 세대당 술 1병, 기름 일인당 200~300그램, 사탕 500그램, 과자 500그램~1킬로그램, 고기 일인당 300~700그램 등을 ‘부식물상점’에서 공급하고 사과 세대당 1~5킬로그램, 배 1킬로그램, 겨울배추, 무 등이며 수산물 상점에서 명태, 다시마 등을 조금씩이다.
이러한 공급량을 타기 위해서는 설명절 공급이 시작되기 며칠전에 인민반장이 동 사무소 도장과 인민반장 도장이 찍힌 공급카드를 새것으로 갱신하여야 한다. 또 인민반장은 상점의 공급물품의 량과 직인이 찍힌 예비 쪽지를 각 가정마다 나누어 준다. 이러한 예비쪽지는 주로 채소상점(남새상점)과 수산물 상점에 한한다.
뒷문으로 이어지는 특혜
식료상점에서는 설 3~4일 전에 사탕과 과자 기름, 고기 등이 도착한다. 이때에는 구역, 군 행정위원회 상업과는 드나드는 사람들로 서있을 틈조차 없이 붐빈다. 그들 중에는 공급물량을 받으려 오는 사람도 있지만 당, 안전부, 행정기관의 간부들과 직장의 간부들이 주민공급량에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안면과 인맥, 권위를 내세우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위의 명절공급품이 조금 떼내고 상점에 와야 매 가정마다 사탕, 과자, 술, 고기, 기름 등을 판매하게 되는 것이다. 식료상점 뒤문에도 사람들이 북적댄다. 상점 책임자와 안면을 통해 공급물품을 빼돌려 내려는 간부들과 사람들, 남들보다 공급물품을 떨어지기 전에 사가려고 안면을 내세우고 뒤문으로 출입하는 사람들 때문인 것이다.
추위 속에서 줄을 서다
식료상점 앞문을 통해 들어가면 좁은 상점 구내에는 구불구불한 긴 줄에 남녀로소가 조급함과 불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매표원을 바라고 기다리고 서있다. 허리굽은 늙은 노인으로 부터 인민학교에 금방 들어갔을 어린 소년, 소녀들에 이르기까지, 밝은 얼굴이라고는 줄 옆에서 사탕과자를 산다고 기뻐하는 어린이들 뿐이다. 드나드는 사람들로 하여 열려진 출입문으로 차가운 겨울의 냉기가 그들의 여윈 몸을 뚫고 스며들어오면 더욱 초라해진다.
그 모습을 보느라면 과연 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되지 않는, 한끼 풍성히 먹으면 점심부터 일상의 옥수수 밥과 찬거리라고는 김치 하나 뿐인 여윈 밥상으로 돌아가건만 그래도 설은 유일한 포식의 희망을 가져다 주는 명절이다. 이 때문에 북한주민들이 체제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그나마의 조그마한 설공급으로 ‘위대한 수령님과 지도자동지의 배려’에 감사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추위로 온몸이 얼어들때라야 차례가 되여 판매원에게서 상점에 비치된 장부와 대조하고 카드를 체크하고 전표를 떼게 된다. 이렇게 되어야 상점에 있는 설공급 식료품이 떨어지기 전에 살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한 숨 돌리게 된다. 이어 매표소에 가서 돈을 물고 다시 판매대에서 다시 줄서기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오늘은 늦어서 혹은 나온 물량이 떨어져서 사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또 마음을 조인다. 이런 과정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줄서기로 추위로 떨고 있던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교대를 하고 황망히 집으로 달려가는 모습도 보인다. 언제 먹어 보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고기의 비릿한 냄새와 몇백 그램의 딱딱한 과자와 달지도 않는 사탕을 먹어볼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을 달래 준다.
찹쌀 배급과 '수령님의 은덕'
상점 외에 설을 맞아서 배급소에서 주는 찹쌀이 있다. 설 명절이나 김일성, 김정일 생일, 북한이 5년, 10년주기로 쇠는 ‘정주년’이면 식량배급소에서는 명절이라고 일인당 두끼분 또는 세끼분을 찹쌀로 배급을 준다. 그것도 보통 2끼분을 주는데 세끼분을 줄때는 "수령님 은덕"을 말한다. 그리고 잡곡으로 주는 배급을 명절날에만 한해서 입쌀(북에서는 쌀을 입쌀이라고 함)을 주는 경우도 있다.
간부들의 요란한 설 잔치
한편에서 이렇게 아이들이 한번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울 량을 가지고 노심초사 하고 있어도 세대주가 간부인 집들에서는 놀부네 집처럼 요란벅적하다. 대부분 외랑형으로 복도가 길게 연결된 북한의 아파트나 하모니카 식의 단층 집 마을에는 동네 아이들의 속을 뒤집어 놓으려는듯 지지고 볶느라고 야단이다. 그들은 설전에 출세를 위해 얼굴도장을 찍으려고, 혹은 간부들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위해 찾아온 손님을 치르느라 초저녁부터 술잔을 기울이기에 바쁘다. 그들은 북한의 특수계층들이라 공급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 상점에서 공급하는 것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구역(한국의 구), 군 당위원회와 인민위원회 같은 권력기관의 주요 간부들의 설공급은 ‘65호공급소’라는 것을 통해서 받는다. 그것도 거주지의 식료상점으로 받는 것 외에 주민공급 기준보다 훨씬 많은 량의 기름과 고기, 사탕, 담배 등을 공급받는다. 여기에 구역 당 책임비서와 같은 급이 높은 특정간부들은 "65호 공급소" 공급외에 김일성의 특별 선물을 받으니 2중~3중의 추가 공급을 받게 된다. 공급으로 넘쳐나는 간부들의 부엌에는 하급 간부들의 뇌물이 명절전이면 줄을 이으니 명절이 얼마나 즐겁겠는가.
권력의 높이는 삶의 질의 높이와 같다. 북한의 국가운영에서 간부에 대한 우대조치는 아주 세밀화 되어 있다. 그것은 국가통치에 중요한 기관일수록, 치안의 기능과 조직의 핵심부서일수록 공급이 더욱 잘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권력에 대한 배려가 북한의 통치체제가 최근의 악조건에서도 북한 체제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간부의 등급이 높을수록 공급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일반주민에서 하급간부에 이르기까지 출세지향적인 의식을 조장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은 당연히 간부들의 명절 쇠는 모습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점에서 한 번 밖에 공급을 받지 못하는 일반주민들은 설명절 공급량을 가지고 제상을 겨우 차리고 그것으로 아침 한끼 먹으면 설음식 먹는 것은 기본적으로 끝난다.
다음 편 예고
설날 아침이 밝으면, 풍경은 또 한 번 바뀝니다. 밤새 준비한 음식으로 어설프게나마 차려낸 제상 앞에서 조상을 기리는 마음과, 정작 그 상 앞에서도 넉넉히 갖추지 못한 부끄러움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김일성의 신년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반가운 손님이 와도 취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팽팽한 긴장. 신년사가 끝나야 비로소 거리에 사람들의 물결이 일고, 그 발걸음은 결국 김일성 동상 앞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명절은 딱 이틀. 사흘째 아침이면 다시 '충성의 선서'로 시작되는 일상이 어김없이 돌아옵니다.
다음 편 [연재 04-2] 설날 아침 — 제사상과 수령님께 드리는 인사(Bowing to the Portrait)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추기 — 2026년
언제부터인가 년말이 되면 북한의 가족 친척들이 남한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달라면서 하는 말이 있다. "내년은 더 어려워질 것 같으니까 지금 돈을 보내주면 곱절로 돈의 효과 높아진다"며 돈을 꼭 보내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삶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1960년대 말의 풍요를 지난 북한은 끊임없이 추락해 지금도 추락하고 있다. 90년대 대량아사 시기를 지나며 북한의 전통과 관습, 문화는 모두 변했지만 그래도 설명절을 기다리는 것은 명절이 되면 풍요로운 순간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풍요로운 순간의 하루이틀을 위해 고통과 준비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80년대 설맞이에 대한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노예라는 것이 무엇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2500만 북한주민이 모두 노예인 것이다. 지금은 그 감옥이 더 철저하게 폐쇄되고 있으니 그만큼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조선조 왕조시대에 노예제가 현대에 김일성 가문에 의해서 다시 부활했다. 이를 어쩔고...
필자소개
북한맨(NKMAN) 김승철. 전 태천발전소 3대혁명소조원. 1991년 북한을 떠나 러시아 벌목장을 거쳐 1994년 한국에 입국. 1997~2007년 북한연구소 연구원, 2008~2025년 북한개혁방송 대표 역임. 북한 정보자유화와 민주화를 위해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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