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화국 — 북한 독재 70년의 숨겨진 설계도

들어가며

북한 안에 또 하나의 나라가 있다.

나는 이것을 《평양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북한 주민 대부분이 들어본 적 없다. 오직 체제의 비밀을 아는 극소수의 간부와 지식인들이 서로 믿는 사람끼리만 나누는 말이다. 나도 북한 내부에서 직접 들었다. 물론 북한 내부에서는 표현이 다르다.

"평양에서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 평양은 사람이 사는 나라다."

평양공화국은 단순한 수도 특권화가 아니다. 절대권력을 보존하고, 충성을 보장·유도하고, 저항과 쿠데타를 원천 차단하며, 완벽한 통제를 실현하여 김씨 가문의 영원한 왕국을 만드는 —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독재 유지 시스템이다.

이 글은 그 설계도를 처음으로 해부한다.

 


1. 1950년대 — 자유가 있던 시절

북한에서 나고 자란 어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옛날에는 살고 싶은 곳에 가서 살았다."

사실이다. 1950년대 초중반까지 북한 주민의 거주 이동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전쟁이 끝난 직후의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가족을 찾아, 일자리를 찾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것이 끝나기 시작한 것은 1957년부터였다.

내각결정 제149호. 이 해에 북한 당국은 주민 성분조사를 시작하고, 출신이 불순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의 거주를 제한했다. 1958년에는 대대적인 중앙당집중지도사업을 통해 반체제 인사들을 솎아냈다.

1967년, 김일성이 갑산파를 숙청하고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면서 주민 재등록이 실시됐다. 여행증 제도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허가 없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1972년. 결정적 전환점이다.

북한은 새 헌법을 채택했다. 1948년 헌법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수부(首府)는 서울시이다."

1972년 헌법은 그것을 바꿨다.

"수도는 평양이다."

단순한 수도 변경이 아니었다. 이것은 선언이었다. 평양은 이제 북한이라는 국가의 행정 중심지가 아니라 혁명의 성지이자 특별한 공간으로 격상됐다. 김일성은 이런 교시를 남겼다.

"평양시는 혁명의 수도인 만큼 당을 옹호하는 사람밖에 누구도 살 권리가 없다."

이것이 씨앗이었다. 그러나 씨앗을 심은 것과 그것을 정교한 시스템으로 키운 것은 다른 문제다. 그 시스템을 완성한 사람이 김정일이었다.

 

2. 김정일이 설계한 다섯 가지 구조

1970년대 중반, 김정일은 아버지의 후계자로 권력을 장악해가면서 평양을 체계적으로 재설계했다. 다섯 가지 구조다.

 

첫째 — 물리적 차단

평양으로 들어가는 모든 길에 검열초소가 세워졌다. 지방 주민이 평양에 가려면 일반 여행증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양 진입을 위한 별도의 가중 승인이 필요하다. 돈과 연줄이 없으면 꿈도 꾸지 못한다.

이 초소는 사실상 국경초소다. 북한 안에 또 다른 나라의 경계선이 그어진 것이다. 평양 여행을 위해 받아야 하는 '승인번호'는 비자였다.

 

둘째 — 자원의 집중

전국에서 생산되는 좋은 농수산물, 식료품, 생활필수품이 모두 평양으로 올라간다. 평양시관리법 제39조는 명시한다. 상품과 원자재를 "다른 부문보다 먼저 공급"하라고. 지방은 평양을 위해 봉사하는 구조다.

1990년대 대기근 때 지방에서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동안 평양은 배급이 유지됐다. 평양 고위층 중에는 지방에서 수백만이 굶어죽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사람도 꽤 있다. 같은 나라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의도된 격차다.

 

셋째 — 신분증 차별

북한에서는 일상에서 '시민'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평양만은 예외다. 1997년부터 평양 주민에게는 감색 플라스틱의 별도 평양시민증이 발급된다. 지방 주민의 공민증과 다르다. 평양시민증을 가진 사람은 북중 국경 인근을 제외하고 별도 여행증 없이 전국을 이동할 수 있다.

휴전선에 인접하여 북한에서 가장 엄중한 검열을 하는 개성시에도 별도 시민증이 없다. 오직 평양에만 있다. 수도에만 별도 시민증을 발급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하다.

 


넷째 — 거주권 매매와 영토 확장

돈으로 평양에 들어갈 수 있다. 재일교포들이 국가에 거액의 외화를 납부하면 평양 거주권을 받았다. 평양 주소권은 사고팔 수 있는 특권이 됐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평양의 경계 자체가 늘어난다. 1995년 평성시 일부가 평양시로 편입됐고, 최근에는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동이 평양직할시로 흡수됐다. 평양은 고정된 도시가 아니다. 체제가 필요로 할 때마다 재편되는 전략적 공간이다.

 

다섯째 — 인구의 선별

김정일은 평양에 들어올 사람과 나가야 할 사람을 철저히 분류했다.

핵심계층, 즉 당과 군의 충성분자들만 평양에 거주할 수 있다. 동요계층과 적대계층은 원천 배제된다. 출신성분 3계층 51부류 분류가 평양 거주 자격과 직결된다.

그리고 소개사업이 있다. 북한 당국은 1970년대 중반부터 정기적으로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평양 시민 중 일부를 지방으로 내보내 적정한 평양시 인구수를 유지한다. 충성도가 낮아지거나 문제가 생기면 추방된다. 평양 추방은 "사회적 사형선고"다. 평양 거주권은 충성에 대한 보상이고, 박탈은 처벌이다.

가장 극단적인 것이 장애인과 왜소증 환자 추방이다. 1960년대부터 북한 당국은 평양에서 장애인들을 조사해 강동군, 중화군 등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남아 있던 장애인들을 함경도 산간 오지와 서해 외딴섬으로 추방했다. 평양을 외관상 완벽한 도시로 만들어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동시에, 결함을 지워서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3. 희망의 덫 — 2천만 명을 움직이는 설계

김정일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충성스러운 300만 명의 인민과 군대만 있으면 된다."

그 300만이 바로 평양 인구다.

이 한 문장에 북한 독재의 핵심 설계가 담겨 있다. 2천만 명을 모두 먹여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300만 명을 확실히 잡아두고, 나머지 1천700만 명이 그 300만 명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인간은 언제나 더 나은 것을 향해 움직인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배부르면 편안함을 찾고, 편안해지면 인정과 우대를 받으려 한다. 김정일은 이 인간의 근본 심리를 정확히 이해했다.

평양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그 좋은 곳에 들어가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설계했다. 평양대학을 다니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고, 평양 출신이라는 것이 명함이 되고, 평양시민증이 특권의 증표가 된다. 북한 지방의 부유층과 권력층은 평양 입성을 일생의 꿈으로 삼는다. 일반 사람들의 경우 지방이 가난할수록 평양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격차가 클수록 희망도 커진다. 그 희망이 복종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희망의 덫이다.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평양이 대단해 보이는 것은 비교 대상이 지방 도시와 농촌뿐이기 때문이다. 서울이나 도쿄와 비교하는 순간 그 환상은 무너진다. 그래서 막는다. 철저하게.

 

4. 내가 직접 본 평양공화국

1984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생 현장감시단인 '3대혁명소조'에 나가기 전 교육차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에서 두세 번째로 큰 함흥시 출신인 내게도 평양은 충격이었다.

평양역에 내렸을 때 역전에 있던 소년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촌놈들이 왔구나."

거리가 넓고 깨끗했다. 백화점에 물건이 있었다. 사람들 옷차림이 달랐다. 혁명의 수도라고 부르는 평양은 일제통치시기보다 더 못하게 사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천국같이 보였다.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대학 졸업생들은 인민문화궁전에서 난생처음 엘리베이터를 보고 너도나도 타다가 고장을 내버릴 정도였다. 평양은 한 번만이라도 가보는 것이 일생의 가장 큰 소망이 되는 곳이었다.

1991년, 나는 러시아 벌목 파견을 나갔다. 소련이 막 붕괴되던 그 순간이었다. 러시아의 경제는 파산했다. 그럼에도 시베리아 광야에 자리 잡은 작은 역전 옆 수퍼에는 식료품이 가득했고 자유롭게 판매되고 있었다.

그 순간 거대한 망치가 내 머리를 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평양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거대한 감옥 안의 상대적 특권일 뿐이라는 것을. 그 깨달음이 내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출발점 중 하나였다.

만약 내가 러시아에 가지 않았다면, 나도 평생 평양공화국을 동경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설계의 무서움이다.

 

5. 평양 안에도 평양공화국이 있다

그런데 평양공화국은 평양이라는 도시에서 끝나지 않는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양 안에서도 최고위층은 일반 주민과 같은 아파트에 살지 못한다. 국가가 지정한 아파트에 산다. 그 아파트는 직계 친척이 방문해도 사전 승인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승인을 받지 못하면 건물 밖에서 만나야 한다.

평양공화국 안에 또 평양공화국이 있다. 특권 안에 또 특권이 있고, 통제 안에 또 통제가 있다.

지방 주민은 평양을 동경하고, 평양 일반 주민은 고위층 거주구역을 동경하고, 고위층은 더 높은 계급을 동경한다. 동경의 사슬이 끝이 없다.

동시에 고위층조차 자신의 아파트에 친척을 마음대로 들이지 못한다. 특권을 누리면서도 감시받는다. 보상과 통제가 분리되지 않는다. 특권이 클수록 감시도 깊어진다.

평양공화국은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다.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김씨 일가가 있다. 북한 전국의 중요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에는 '8호작업반', '9호작업반'이라는 것이 있다. 김씨 일가가 먹고 쓰고 소비하는 것을 생산하는 8호작업반, 김씨 일가의 친족과 북한 최고위층이 먹고 쓰고 소비하는 것을 생산하는 9호작업반이다.

1981년, 나는 함경남도 금야군 농촌노력동원에서 8호작업반 반장에게 직접 들었다. 김일성이 먹는 사과나무와 배나무에는 여름마다 30킬로그램짜리 설탕 한 포대씩을 쏟아붓는다고. 북한에서 설탕은 보약처럼 쓰인다. 귀해서다. 그 설탕을 과일나무 한 그루에 한 포대씩.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평양공화국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어떤 곳인지를 말해준다.

김씨 일가를 제외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다만 계급에 따라 더 좋은 감옥에 살 뿐이다.

 

6. 평양을 지키는 군대 — 쿠데타를 원천 차단하다

평양공화국에는 마지막 설계가 있다. 군사적 설계다.

평양방어사령부, 현재의 제91수도방어군단. 그리고 호위사령부. 이 두 부대의 핵심 임무는 외부의 적을 막는 것이 아니다. 군사쿠데타로부터 지도부와 수도를 방어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사실이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두 부대의 무기는 북한에서 가장 좋은 최첨단 무기들이다. 일반 북한군으로서는 몇 개 사단이 붙어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북한의 장군들은 안다. 자신들이 아무리 많은 병력을 모아도 평양을 향해 진격할 수 없다는 것을. 쿠데타를 생각하는 순간, 그 생각은 불가능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이것은 공포의 균형이 아니다. 공포의 압도다.

희망으로 주민을 묶고, 최첨단 무기로 군부를 묶는다. 평양공화국은 위아래 모두를 동시에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7. 왜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가

역사상 독재자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공포로 억누르거나, 빵으로 달래거나.

소련은 모스크바를 특권 도시로 만들었다. 중국은 베이징에 자원을 집중했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뿐 아니라 함흥까지 방문했다. 나도 당시 함흥 다리에서 그를 환영하는 행사에 동원됐던 기억이 있다. 그는 김일성의 통치 시스템과 평양공화국의 설계에 감명받아 귀국 후 루마니아판 주체사상 운동을 시작했고 수도 부쿠레슈티에 인민궁전을 건설했다. 이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이것은 하지 않았다.

수도 거주 자격을 출신성분으로 법제화하고, 별도 신분증을 발급하고, 이중 통제를 제도화하고, 성분 불량자와 장애인을 추방하고, 정기적으로 주민을 솎아내는 소개사업을 상시 운용하면서, 동시에 10만 명이 넘는 최첨단 무장 병력으로 쿠데타를 원천 차단하고, 나머지 1천700만 명이 자발적으로 동경하고 복종하도록 희망을 설계한 나라는 없다.

억압과 회유를 하나의 공간 시스템으로 융합한 것이다.

김일성이 조선시대 한양의 내성·외성 구조를 꿈꿨다면, 김정일은 그것을 21세기 독재 유지의 정밀 기계로 만들었다.

 

나오며

북한이 70년을 버티는 것은 주민이 순하거나 무지해서가 아니다. 총칼이 무섭기 때문만도 아니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설계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자들에게는 평양공화국 시민이 될 수 있다는 희망. 한 계단씩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이 2천만 명을 매어두는 가장 강력한 사슬이다.

그러나 지금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장마당 세대는 국가 배급을 받아본 적 없다. 스스로 살아남았다. 불법 USB로 들어온 한국 드라마를 봤다. 평양이 아무리 좋아도 서울과 비교하면 초라하다는 것을 안다.

평양공화국의 환상이 유지되려면 비교 대상이 지방 농촌이어야 한다. 그런데 비교 대상이 서울, 도쿄로 바뀌는 순간 그 환상은 무너진다.

김정은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여명거리, 화성지구, 새 고층 아파트를 계속 짓는다. 아버지가 만든 평양공화국의 환상을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투자다. 그러나 동시에 공포를 강화한다. 외부 영상 시청자를 처형한다. 공포로 환상을 지키려는 것이다.

희망이 무너지는 속도와 공포가 버티는 속도. 이 두 속도의 싸움이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




--- [필자 소개] 
글쓴이: 김승철 (닉네임: NKMAN)
 현) 북한 정체 및 민주화 전략가 
 전) 북한개혁방송(North Korea Reform Radio) 대표 (2008~2025) 
전) 북한연구소(Institute of North Korea Studies) 연구원 (1997~2007) 
 문의 및 제안: nkma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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