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6년 말부터 불교 잡지 <금강>에 기고했던 연재물입니다. 북한 현실의 시대성과 진실성, 현실성을 위해 원고 교정을 거쳤습니다.
제2회 : 밥상 위의 계급 — 김장독에서 65호공급소까지
정직하게 살수록 가난해지는 역설
특히 어려운 사람들 중에는 국가에서 주는대로 먹고 북한 정부의 선전을 곧이곧대로 믿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욱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암거래나 공장제품을 훔쳐서 식량과 바꿔먹는다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좀 났기 때문이다.
밥그릇 크기가 말해주는 것
한국에는 생활수준이 높아 먹을 것이 다양하고 많은 영양식이 개발되여 있다. 남한의 밥그릇은 북한 밥그릇의 1/2.5 정도 된다. 그만큼 다양한 음식과 영양을 섭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도 남한 사람들은 다이어트 하느라고 야단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북한의 실정에 대해 "그래도 쌀밥이야 먹겠지?"하고 의문을 표시하는데 그런 질문에는 필자도 할말을 잃게 된다.
부식이 없는 밥상, 배급에 목숨 거는 진짜 이유
북한사람들이 배급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다양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부식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농업정책이 알곡생산 위주로 진행되어 왔고 작물배치에서도 쌀과 옥수수 외에는 다른 작물을 최소량만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협동농장에서 채소는 봄과 가을 김장용 채소를 위해서만 재배하도록 하고 있다. 채소가 한창 나올때는 남새상점에 자유판매를 한다. 하지만 그때뿐이고 철만 지나면 절인 양배추나 배추가 기본 찬거리로 된다. 봄철부터 7월 말, 8월 초가 되면 여름 채소는 동이 나서 상점에서 팔지 않고(그나마 식품공급 카드에 의한 공급) 채소를 먹으려면 김장용 배추를 심은 것이 자라서 솎음을 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자면 9월 중순 쯤 되여야 하는데 이 기간을 위하여 웃돈이나 안면, 또는 뇌물을 주고 양배추를 양껏 사서 김치독에다가 절여 두는 것이 북한의 풍속이다. 채소가 한창 나올 때 다량으로 사서 김치독에 절구어 놓을 수 있는 집은 그래도 잘 사는 집에 속한다.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씻어 간장으로 간을 맞춰 반찬으로 먹는 것이 보통이고 겨울에는 김치만 바라고 살아가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김장, 겨울을 나는 유일한 방법
겨울 부식으로 북한 사람들에게 김치를 빼어놓고는 식탁을 생각해볼 수 없다. 그러기에 세대주(가장을 말함)들의 제일 중요한 겨울준비(월동준비라고 한다)는 겨울철에 땔 무연탄을 장만하고 김장용 배추와 무, 고추를 장만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식량사정으로 채소 공급 면적을 자꾸 줄이다보니 1989년 가을에 일인당 배추는 30kg, 무우는 11kg을 공급했는데 최근에는 10kg내외라고 한다. 그것을 가지고 다음해 4월 채소가 날때까지 먹어야 하니 다른 부식이 없는 형편에서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일반 가정들에서는 이듬해 2월 경이면 김치는 동이나고 그나마밖에 묻어놓은 김치독을 도적맞히고 나면 간장이나 소금물에 밥을 먹는 수밖에 없게 된다.
상점 네 곳, 그리고 카드
| 2011년 청진시 수남시장 모습 |
한국에 와서 제일 놀란것이 수퍼나 각종 상점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북한에는 주민지구들에 상점들이 제한되여 있다. 상점들이라야 "식료상점", "공업품상점", "수산물상점" 그리고 "남새(채소)상점"이 전부이고 그것도 행정구역내의 몇 개 동에 한 곳씩 제한되어 있다. 우에서 지적한 네개의 상점들은 모두 자신의 배당구역에서 주민들에게 공급카드에 의한 체크하면서 일정량을 팔아주는 '기록판매'로 채소와 식료품 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남새상점"이나 "수산물상점"은 일년중 치고 문을 여는 날이 적은데 "수산물상점" 같은 것은 일년치고 문을 열고 파는 날이 2~3개월밖에 안된다.
이 중에서 그래도 일년중에 제일 문을 많이 열고 판매를 하는 것은 식료품상점이다. 식료품 상점은 위에서 지적한 네 개의 상점중 가장 많은 품목을 팔아야 하지만 그래도 정상적으로(?) 판매를 하는 것은 한달에 한번씩 매 가정마다 간장과 된장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간장, 된장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늦어주거나 물을 타서 파는 경우도 있으니 제대로 주는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형편이다.
"잘 사는 집엔 간장이 모자라고, 못 사는 집엔 된장이 모자란다"
그래서 북에서 생겨난 속담중에는 "잘 사는 집에는 간장이 모자라고 못 사는 집에는 된장이 모자란다."말이 있다. 이것은 잘사는 집은 찬거리를 많이 해먹으므로 간장이 모자라고 못 사는 집은 된장을 찬으로 먹으니 모자란다는 뜻이다.
65호공급소 — 통치술의 비밀
북한에는 간부들을 위한 특별공급소가 있다. 간부들은 일반 상점에서 공급받는 것 외에 "65호공급소"라고 하는 별도로 간장, 된장, 기름 및 담배나 고기 등을 추가 공급받는다. 여기에 북한의 통치술의 비법이 숨어있는 것이다.
반세기의 약속, "이밥에 고기국"
김일성이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면서 "이밥에 고기국을 먹고 기와집 쓰고"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한지도 반세기가 지나갔다. 그 희망을 믿고 북한주민들은 김일성에게 충성했지만 혼자서만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민에게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이 죽어버렸다. 그래도 최근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이 김정일보다 정치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인간답게 살기 위한 세상이 북한에 실현되기는 아직 멀어 보인다.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에서는 배급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훔쳐야만 살아남는" 생활 속으로 내몰렸는지 — 조절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생업이 되어버린 도적질의 실태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필자 추기 — 2026년]
지금의 북한은 자영업, 장사 등이 아주 활발해지고 배달, 배송, 송금 등의 다양한 개인영역의 경제활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모든 것이 국가가 운영하지만, 모든 것을 개인이 판매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년간에 북한에서 전해온 소식을 들어보면 도시에서 먹고 살 수가 없어 집안의 모든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고 산으로 들어가 초막을 짓고 사는 사람들도 여전합니다.
그러다가 초막이 불타 죽기도 하고 그마저도 어려워 자살하기도 한다고 하니... 북한의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원한이 떠돌고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살고 있으되 사람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북한주민들, 그리고 그런 북한에서도 평양의 권력층과 부유층 자제들은 하룻밤에 수백달러를 탕진하는데... 4인가족이 100달러면 1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곳이 북한입니다.
김일성 사망 후에 배급제가 붕괴되고 주민들이 스스로 장마당을 통해 먹고 살게 되니 북한당국은 북한주민을 방치하고 독재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재구축했습니다.
최근 몇 년동안에는 그렇게 노예같은 사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는 소식까지 들으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필자 소개]
글쓴이: 김승철 (닉네임: NKMAN)
전) 북한개혁방송(North Korea Reform Radio) 대표 (2008~2025)
전) 북한연구소(Institute of North Korea Studies) 연구원 (1997~2007)
문의 및 제안: nkmans@naver.com
태그: 80년대 북한 이야기, 칼럼, 다시 읽는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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